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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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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반] 83년 전 특별했던 개교 기념식과 교장 선생님의 퇴임식
이름
매향중학교
작성일
2020-05-06



매년 63일은 매향중학교 개교기념일이다.

매향중학교가 190263일에 학교 문을 열었으니 2020년은 개교 118년 되는 해이다.

지난 118년간 매향중학교는 매년 6월 개교 기념식을 거행해 왔지만, 그러나 여기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개교 기념식 하나를 소개해 본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83년 전인 1937! 바로 그해 6월에 개최된 35주년 개교 기념식을 말이다.  

19376월 매향중학교에서는 개교기념 행사가 근 한 달여간 지속하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한 달여간에 거쳐 개교기념 행사가 진행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1907년 학교장으로 부임하여 30년간 매향 학원의 발전을 위해 애쓴 미국인 여교장 밀러(미라,美羅. Lula Adelia Miller.1870.6.3~1958)) 퇴임이 같은 달 628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19376월 밀러 교장 선생님은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개인 돈 7천 원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수원 사람들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이 나라 이 수원 땅에서 식민지 조선인 학생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퇴임에 앞서 개인재산 7천 원을 기부한다는 사실에서 더없이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수원 시민들의 감명은 곧 당시 수원 대 부호인 양성관과 차유순이 중심이 되어‘35주년 기념 사업회의 조직으로 나타났다.

본교 교사와 영향력 있는 수원의 인물들이 다수 참여한‘35주년 기념 사업회조직의 목적은 밀러 교장의 퇴임을 맞아 그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 건립과 개교 35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학교 건물 신축 및 교재 교구의 확충에 있었다.

‘35주년 기념 사업회회장 양성관과 부회장은 학교 발전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76월 중순까지‘35주년 기념 사업회가 마련한 학교 발전기금은 13천 원이었.

‘35주년 기념 사업회의 노력의 결과를 당시의 동아일보는 1937627자 신문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35주년 기념 사업회를 조직하여 백방으로 강구한 결과 교사건축(校舍建築)이 필요하다 하야 동회 회장 양성관씨와 부회장 차유순씨의 각 1천원 식을 비롯하야 각 유지들의 다대한 기부로서 총계 5천원으로서 미라 교장의 7천원과 합 13천원으로 기념교사건축과 기본재산으로 토지를 매입하였다하며 그 외에 양성관씨는 다른 교사(校舍) 수리비를 부담하였고 차유순씨는 교정 주위의 돌담을 부담하였다 하며 부회장 안영태씨도 구교사(舊校舍) 이전 비를 부담하게 되어 동교는 면목일신 하였다는데 기타 각 방면에서도 너도 나도 하게 되어 유봉운 여사는 라디오겸 축음기 1대를 기증하였고 박동근씨는 전화기 1대를 기증하게 되어 동교는 내외가 전부 완비되었다.”   

‘35주년 기념 사업회의 또 다른 노력의 결실을 매일신보는 또한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30여 년 동안 교장의 직에 있으면서 하루같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헌신적 노력을 다해 오던바 금번 귀국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오. 우리 수원에 대한 큰 손실이라. 하여 수원 유지 제씨와 학교 당국 자간에 타협이 일치하야 삼십오 주년 기념 사업겸 미라 교장을 표창코자 유지 제씨의 희사가 답지하야 총 공사비 78백 원으로써 연와제(煉瓦製) 교사를 증축 중에 잇는 바이요. 수원 실업가 양 청년의 장거 희사가 있었다. 양규봉씨는 구교사 개축비 5,6백 원을 자담하였다하며 차준담씨는 학교 장벽을 자담 건축하기로 하고 방금 공사를 착착 진행 중이라 하며 총 공사비가 4,5백 원을 요한다는데 일반사람들은 양 청년의 장거에 감탄한다고 한다.”(매일신보.1937.6.17.)  

개교 35주년 기념행사는 학생들의 바자회, 전시회, 교내 운동회 등 다양한 행사 속에서 6월 내내 진행되었고, 개교 기념식은 628일에 있었다.

628일 오전 1030300여 명의 내외빈 참석으로 성대히 거행된 35주년 기념식의 마지막 식순은 밀러 교장의 30년 봉직의 공덕을 기념하는미라 교장 기념비제막식이었다. 아래 사진을 보자!

           

                   (사진 1)                                        (사진 2)

(사진 1)1937628일 바로 그날의 제막식 때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1)의 가장 오른쪽이 양성관 회장이며 두 번째 분이 바로 밀러 교장 선생님이.

(사진 2)1937630일 매일신보에 실린 밀러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다


이날의 개교 기념식은 밀러 교장 선생님의 퇴임식이기도 했다.‘미라 교장 기념비제막식 거행에 앞서 밀러 교장 선생님은 퇴임을 맞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퇴임사로 대신했다.   

불초 내가 조선에 온지 36년이오. 수원에 파송을 받아 제위에 누됨이 30년이라. 그동안에 많은 애호를 감사하오며 본교 창립 35주년을 당하오니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본교 35주년 기념을 위하야 만은 원조와 수고를 하신 여러분의 후의는 백골난망이오나 굽히여 나가서 일일이 사례치 못함을 너그러이 용서하심을 바랍니다. 이제부터 1년이나 혹은 2년 후에는 고국에 돌아갈터인 고로 매양 염려되는 것은 학교가 기본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어찌 떠날 수가 있을까 하였더니 금번 수원 유지 제위와 졸업생 여러분의 동정과 열성이 본교에 집중 되심을 보니 이제는 여한이 없는가 합니다. 미약하나마 30여년 길 이어온 이 학교의 장래가 여러분의 손에 크게 빛나게 되기를 바랍니다.”(매일신보.1937.6.30.)

  

떠나가면서도 학교를 염려하는 교장 선생님의 지극한 학교 사랑이 83년 세월의 저편을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도 절절히 전해온다.

그날 그때의 밀러 교장 기념비는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가도 아름다운 학교 사랑의 뜻은 더욱 빛나고 있다. 당시에 건립된 미라 교장 기념비문의 내용은 이렇다. 

  

生於紐育 老於水原     생어뉴육 노어수원    뉴욕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늙었네

心惟賴主 志在敎育     심유뢰주 지재교육    마음은 오직 주님에 의지하고, 뜻은 교육에 두었네

 

爲我三一 勤續Ш年     위아삼일 근속삼년     오직 삼일학교를 위하여 30년을 근속하고

筋骨旣衰 停年歸國     근골기쇠 정년귀국     근육과 뼈가 쇠하여 정년에 귀국하였네     

    

其於朝鮮 犧牲極矣     기어조선 희생극의     조선에서 희생함이 지극하도다.

人誰無頌 石亦頌德     인수무송 석역송덕    사람 중 누가 칭송하지 않으리오? 돌도 또한 덕을 칭송하네

   

昭和十二年六月三日    소화12년6월3일       193763

紀念會代表 梁聖寬     기념회대표 양성관    기념회 대표 양성관


 아래 사진은 오늘날 미라교장기념비의 모습이다. 


(사진 3) 오늘날 밀러 교장 기념비의 모습이다. 현재 고등학교 행정실 옆에서 지난 83년을 한결같이 매향학원을 지켜오고 있다. 그러나 건립 이후 위치가 수차례 변하였고 일부 부속물이 소실되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는 많다. 그러나 100년의 전통을 가진 학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밀러 교장 기념비(美羅校長記念碑)는 분명 오늘의 우리에게 그것을 말하고 있다.

35주년 개교기념 행사는 당시 매향중학교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수원의 유지들이 대거 참석하였다는 사실에서 수많은 수원 사람들모금 운동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매향중학교 118년의 역사는 곧 매향 학원만의 역사가 아닌 수원의 역사요 대한민국의 교육사인 것이다.

매향중학교 교육사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곧 대한민국 교육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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